위기와 기회는 동전의 양면…땅투자 생존전략 '진화타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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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태의 전원통신 ⑬토지 신투자전략

'골이 깊으면 산도 높다' '위기 다음은 기회다'.

땅 투자 고수들이 들려주는 격언이다. 토지시장에서 침체 국면이 지나면 활황 장세가 찾아왔던 점을 빗댄 말이다.

1997년 찾아온 IMF 외환위기가 대표적이다. 당시 위기감이 깊어지면서 토지시장은 큰 혼란에 빠졌다. 땅값은 반토막이 났고 급매물이 쏟아졌다. 하지만 99년 말 정부의 적극적인 경제 회생 대책이 이어지면서 땅값이 뛰기 시작했다. 2001∼2006년까지 전국의 땅값 상승률은 23.1%를 기록했다.

이때 재미를 본 것은 다름아닌 일찌감치 위기와 공포를 사들인 사람들이다. 급매물로 나온 알짜 땅을 싸게 잡은 투자자들 말이다.

이른바 '진화타겁'(袗火打劫) 전략이다. 진화타겁은 손자병법에 소개된 전술이다. 불이 나서 혼란할 때 오히려 이득을 취하는 병법이다.

어둠 깊으면 새벽이 온다


경기도 이천에 사는 이모(51)씨는 롤러코스터를 탄 기분이다. 지난 20년여 년간 토지시장에서 잔뼈가 굵을 동안 여러 차례 바닥과 정점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그는 경기도 이천에 있는 한 부동산중개사무소의 중개 보조원에 불과했다. 잘 아는 학교 선배(부동산공인중개사)의 잔심부름이나 거들고 있던 그가 기회를 맞은 것은 IMF 외환위기가 절정을 이룬 1998년이다. 공인중개사인 선배가 고객으로부터 의뢰 받은 경기도 광주 땅(밭 1700㎡)의 매도업무를 이씨에게 일임했다.

이씨가 매매 대행을 위임 받은 땅은 당시 시세가 3.3㎡당 30만원 선. 하지만 갑자기 불어 닥친 불황으로 급전이 필요해진 땅 주인이 땅을 3.3㎡당 20만원에 급매물로 내놨다.
그러나 '작자(매수 희망자)'가 좀처럼 붙지 않았다. 땅값은 금세 3.3㎡당 15만원까지 뚝 떨어졌다.

땅 주인이 매도 희망가를 조금 더 낮추자 입질이 왔다. 서울 강남에 근거지를 둔 '급매물 사냥꾼'들이 달라붙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매도 희망가(3.3㎡당 15만원)와 매수 희망가(3.3㎡당 10만원) 차이가 너무 컸다. 흥정은 결국 실패로 끝났다.

“믿고 맡겼더니 일 처리를 제대로 못한다”는 선배의 질책이 이씨에게 쏟아졌다.

고민하던 이씨는 결국 자신이 그 땅을 매입하기로 마음먹었다. 결혼자금으로 모아두었던 돈을 투자해 이 땅을 3.3㎡당 12만원(총 6200만원)에 샀다. 모자라는 돈은 지인들에게 빌려서 채웠다. 당시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부동산시장 상황을 감안하면 그의 결정은 커다란 모험이었다. 자칫 애써 모은 결혼자금을 날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2년 뒤 대반전이 일어났다. 정부의 강력한 경기 부양책으로 부동산시장이 되살아나면서 여기저기서 땅을 팔라는 전화가 걸려 오기 시작했다. 알고 보니 이씨 땅은 전철(성남∼여주 복선전철) 역사 예정지 인근의 노른자 땅이었다.

이씨는 적절한 매도 타이밍을 기다렸다. 서너 달쯤 지나자 땅값이 3.3㎡당 60만원까지 치솟았다. 이씨는 흥정 끝에 한 개발업자에게 3억1000만원에 땅을 넘겼다.
양도소득세 등 세금을 제외하고도 2억원에 가까운 현금이 이씨의 수중에 떨어졌다.

뜻하게 않은 거금을 손에 쥐게 된 이씨는 고무됐다. 역시 믿을 것은 땅밖에 없다는 신념을 굳힌 것도 이때부터다.

이씨는 땅 투자로 벌어들인 수익의 대부분을 이천?광주?용인 등지의 급매 땅을 사는데 재투자했다. 그렇게 사들인 땅이 한때 3만5000㎡(8필지)가 넘었다.
2002년 월드컵이 끝나자 전국 땅값이 또다시 치솟기 시작했다. 이씨가 보유하고 있던 땅의 값도 뛰었다. 시가로 따져보니 보유 땅값이 50억원에 가까웠다.

드디어 이씨에게 봄날이 왔다. 이천에 집을 마련하고 차를 샀으며 결혼도 했다. 사업 분야를 확대해 펜션단지 개발과 분양사업에 뛰어들었다.


토지시장, 봄날은 올까


하지만 봄을 거쳐 여름이 지나고 가을은 가고 겨울이 닥치는 게 자연의 순리다. 2005년 정부는 땅 투기를 막겠다는 명분을 내세워 규제의 칼날을 휘둘렀다. 비업무용 토지(부재지주 농지)에 양도소득세 중과를 시작으로 실거래가 등기부등본 기재, 토지거래허가제 강화 등의 ‘핵폭탄’급 규제가 줄을 이었다.

토지시장은 급속히 얼어붙었다. 거래가 중단되고 자고 나면 땅값이 뚝뚝 떨어졌다. 이곳 저곳에서 문을 닫는 중개업소가 속출했다. 이씨도 예외는 아니었다.

급전이 필요해 보유하고 있는 땅을 급매물로 내놓았지만 거들떠보는 사람이 없었다. 매도 희망가를 낮추고, 일시불 거래(계약금?중도금?잔금을 한꺼번에 받는 대신 땅값을 20~30% 깎아주는 거래방식)도 시도해봤지만 헛일이었다. 사업이 잘 안 풀려 급전이 필요한 상황인데, 급매물로 내놓은 땅은 팔릴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땅 거지'가 따로 없었다. 땅 거지는 갖고 있는 땅은 많지만 현금이 없어 생활고를 겪는 사람을 뜻하는 토지시장의 속어다.

설상가상으로 2008년 세계 금융위기가 불어 닥쳤다.

하지만 이씨는 크게 낙담하지 않고 있다. '겨울 다음에 반드시 봄이 온다'는 순리가 토지시장에도 통한다고 굳게 믿고 있기 때문이다.

이씨는 "소나기가 그치고 나면 햇볕이 나게 돼 있다"는 말로 기대감을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