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금다발·상품권·명품백...'진흙탕' 재건축 수주전 이런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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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S건설, 한신4지구 수주전 금품 수수 신고내용 공개

현금·상품권·고가수입 가전제품...

서울 강남권 재건축 수주전에서 건설사가 표를 얻기 위해 조합원들에게 뿌렸다고 신고된 금품이다. 은밀하게 이뤄져 온 '진흙탕' 수주전의 일부가 실체를 드러낸 셈이다.

공사비가 2조6000억원에 이르는 서울 서초구 반포동 반포주공1단지 등에서 수주전이 과열되면서 정부가 규제에 나섰지만, 여전히 혼탁하다.

지난달 29일 국토교통부는 주요 건설업체의 담당자들을 불러 시공사 선정 과정에서 조합원들에게 금품·향응을 제공할 경우 엄격히 처벌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대책 마련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과열된 재건축 수주전은 현재 진행 중인 국정감사에서도 도마 위에 올랐다. 지난 12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국토교통부 국정감사에서 안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서울 잠실 등 일부 재건축 사업장에서 조합원을 상대로 과도한 금품수수가 이뤄지면서 아파트 값을 끌어올리고 있어 철저히 단속, 처벌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합동으로 상시 점검반을 운영하고 처벌을 강화할 예정"이라고 답변했다. 그는 "시공사 선정 관련한 제도개선을 준비 중"이라고 덧붙였다.


▲ 재건추 수주전에 동원된 금품. GS건설은 한신4지구 재건축 수주전에서 조합원이 받았다며 신고한 금품들을 공개했다.[사진 GS건설]


국감장에서도 문제 된 재건축 과열 수주전


재건축 사업을 총괄하는 현행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법(11조)은 '누구든지 시공자의 선정과 관련해 금품·향응 등 재산상 이익을 제공하거나 제공 의사를 표시하거나 제공을 약속하는 행위'를 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

이 규정을 위반하는 건설사 법인, 건설사나 용역업체 직원은 처벌 대상으로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게 돼 있다.

일부에선 재건축 수주전은 더욱 달아오르는데 처벌 규정은 오히려 약해져 수주전 과열이 조장됐다는 지적도 있다. 처벌 조항은 2012년 현재 내용으로 개정됐는데 그 이전에는 5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0만원 이하의 벌금이었다.

GS건설은 15일 서울 서초구 잠원동 한신4지구 재건축 수주전 과정에서 경쟁사인 롯데건설로부터 받았다며 조합원들이 신고한 현금 등 금품명세를 공개했다. 이 회사는 지난달 26일 수주전에서 선물 제공 등 위법사례가 없도록 하겠다는 자정 선언을 한 뒤 한신4지구 수주전부터 '매표 시도 제보에 대한 신고센터'를 운영해왔다.

당시 ‘도시정비 영업의 질서회복을 위한 GS건설의 선언’을 발표하며 식사 제공이나 선물 제공 금지, 순수한 홍보 목적에 맞지 않는 과다한 장소 사용 금지, 사회적 상식에 반하는 마케팅 및 현혹적인 조건 또는 이면에서의 음성적인 조건 제시 금지 등을 담았다.
 
신고센터 제보 대상은 경쟁업체 뿐 아니라 GS건설과 관련된 위법 사례도 포함됐다.

한신4지구 재건축은 공사비가 1조원가량(건립 규모 3685가구)인 사업으로, GS건설과 롯데건설이 시공권을 둘러싸고 경쟁을 벌였다. 이날 시공사 선정 조합원 총회에서 실시된 투표에서 GS건설이 시공사로 선정됐다.

GS건설은 투표가 끝나고 개표에 들어갔을 때 신고접수 내용을 공개했다. GS건설은 "사전에 공개할 경우 투표에 영향을 줄 수 있어 투표 완료와 동시에 공개키로 했다"며 "수주전 결과와 아무 상관 없다"고 설명했다.

한신4지구 수주전서 위법 상담 220여 건


이 회사는 신고센터 운영 결과 지난 9일부터 14일까지 6일간 227건의 상담 문의를 받았고 조합원들로부터 25건의 신고를 접수했다고 밝혔다. 신고된 금품은 현금 50만~100만원, 50만~100만원어치 상품권, 100여만원 상당의 명품가방 교환권, 60만원 상당의 수입청소기 등이다.

조합원들은 롯데건설 직원이나 롯데건설을 위해 일하는 용역업체의 OS요원(홍보직원)을 통해 금품을 받았다고 신고했다.

지난 10일 서울 서초구 잠원동 한신4지구주택재건축정비사업조합 사무실에서 시공사 선정을 위한 부재자투표가 실시됐다.

GS건설은 이번에 신고된 내용에 대한 법률 검토를 거쳐 수사 의뢰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임병용 GS건설 사장은 “이번을 계기로 재건축 수주 뿐 아니라 부동산시장의 구시대적인 관행이 바로 잡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앞서 지난 11일 롯데건설을 시공사로 선정한 송파구 신청동 미성크로바 재건축 수주전에서도 현금 등 금품이 동원됐다는 의혹이 일부 언론매체에서 제기됐다. 수주전에 참여한 대형 건설사의 수주기획을 맡은 용역업체가 조합원들에게 수백만원대 돈봉투를 뿌렸다는 것이다.
 
GS건설은 15일 미성크로바 수주전과 관련해 공개한 문건에서도 이같은 정황이 엿보인다. 이 문건에는 건설사가 조합 임원·대의원 등을 금품으로 특별관리했다는 내용이 들어있다. 조합 임원 등의 이름과 500만~1000만원에 이르는 계약금, 지지자 30명 이상 확보 등의 약정내용이 쓰여 있다.

건설사가 불법을 각오하고 수주전에 사활을 거는 이유는 '일감 부족' 때문이다. 건설업은 수주산업으로 일감을 따놓아야 안정적으로 먹고 살 수 있다.

갈수록 먹거리가 줄고 있다. 2014년 이후 공공택지 개발 중단으로 주택을 지을 땅을 확보하기 어려워졌다. 8·2부동산대책 등 정부의 강력한 규제로 주택시장 전망이 밝지 못하다.

특히 대형건설사의 경우 해외벌이도 시원찮다. 저유가 등으로 해외 수주 실적이 주춤해서다. 지난해 해외 건설 수주액은 282억 달러로 2015년보다 38.9% 줄었다. 2006년(165억 달러) 이후 10년 만에 가장 적은 수치다.
 
여기다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이 줄면서 도로·철도 등 공공공사 발주가 감소하는 점도 한몫한다. 정부는 내년 SOC 예산을 올해보다 20% 줄어든 17조7000억원으로 책정했다.
 

건설사는 '퍼주기 조건' 제시, 뒤에선 용역업체 통해 금품 제공


이런 상황에서 대규모 재건축 사업장은 '영양가 많은 먹잇감'이다. 재건축 공사 기간이 3년 정도여서 재건축 수주는 3년간 일감을 보장한다. 단위면적당 공사비가 올라가면서 '파이'가 커지기도 한다.

강남권은 분양경쟁이 치열하다. 설사 일반분양분 분양 속도가 느리더라도 전체 물량의 70~80%를 차지하는 조합원 물량은 이미 분양된 것이나 마찬가지여서 부담이 적다.

재건축 뿐 아니라 주택사업 수익률이 높다. 전체 건설업계 영업이익률(매출액 대비 영업이익 비율)이 5% 정도인데 주택분야은 15%가량 된다. 많이 남기 때문에 그만큼 영업비로 쓸 여윳돈이 많은 셈이다.

건설사들은 이사비 등을 자금을 쏟아붓는 조건 제시로 조합원들의 환심을 사고, 수주전 뒷전에서 용역업체를 통해 조합원을 직접 접촉하며 금품 등으로 매표를 하고 있다.

반포주공1단지1·2·4주구에서 7000만원 이사비 무상 지원이 논란이 돼 국토부에서 위법 소지를 제기하기도 했다. 잠실 미성크로바와 한신4지구에선 조합이 초과이익환수제에 따른 재건축부담금을 부담할 경우 일부를 내주겠다는 제안이 나오기도 했다. 이 역시 국토부는 위법소지가 있다고 밝혔다.
 
용역업체를 통한 수주전 홍보는 문제가 생겼을 경우 업체와 무관하다는 '꼬리 자르기'가 가능하기도 하다.

재건축 수주전 불법 처벌 강화돼야


GS건설이 밝힌 이번 한신4지구 위법사례 신고 내용에 대한 수사가 진행될 경우 이들 금품을 받은 조합원의 처벌 여부가 문제가 될 수 있다. 현행 법은 금품 제공 뿐 아니라 수수도 하지 못하도록 돼 있다.

'금품·향응 또는 그 밖의 재산상 이익을 제공받거나 제공의사 표시를 승낙하는 행위'도 금하고 있다. 제공자와 마찬가지로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지난 8월 개정돼 내년 2월 시행 예정인 관련 법령에 따르면 자수자에 대해 형벌을 감경하거나 면제하는 특례조상이 신설된 점을 감안해 시행 이전이더라도 자수자에 대한 보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내년 2월부터 자수자 특례와 함께 금품ㆍ향응 수수행위 등에 대한 신고포상금제도도 시행된다.
 
국토교통부는 재건축 수주전 과열 문제가 커지자 지자체와 함께 연말까지 합동현장점검을 추진하고, 금품·향응 등 불법행위 적발 시 엄중처벌키로 했다. 지난 10일 관련 구청 및 조합에 '정비사업 클린 신고센터'를 설치했다.

금품·향응 등을 제공해 일정금액 이상 벌금형을 선고받을 경우 정비사업 입찰참가를 제한하고 시공자 선정도 취소하는 규정도 마련하고 있다.

이번 기회에 20년 가량 이어져온 재건축 수주전의 고질병을 고쳐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재건축 수주전은 1990년대 후반부터 시작됐다. 강남권에 재건축이 상당 부분 진행됐지만 압구정동 등 앞으로도 대규모 사업장이 많이 남아있다.

제동이 걸리지 않으면 수주전 '진흙탕' 싸움은 더욱 심해질 것이다. 수주전 과열로 인한 분양가 상승, 금품 제공 등에 따른 위화감 조성 등과 같은 사회·경제·도적적 문제가 우려된다.

▲ 건설사가 조합 임원 등을 통해 금품으로 지지자를 확보하려 했다는 내용 등이 담긴 문건. GS건살이 미성크로바 재건축 수주전에서 경쟁사가 작성했다며 15일 공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