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장도 알아야…준비 잘 된 건축주가 좋은 집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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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계는 주택 건축 첫 단추…제값 주고 전문가에 맡겨야

건축사인 필자가 사무실을 개업하고 얼마 되지 않아서 겪은 일이다. 어느 노부부가 단독주택을 짓고 싶다며 사무실로 필자를 찾아왔다. 상담을 하다 보니 이미 주택 건축 공사가 어느 정도 진행된 상태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의아한 생각이 들어 노부부에게 현재 건축이 진행 중인 주택의 기존 설계도면과 인허가 상황을 물었다. 그러자 이들 노부부가 내놓은 대답이 당혹스러웠다.

노부부는 “설계도면은 전문가가 아니라서 봐도 잘 모르기 때문에 건축주에게는 큰 의미가 없는 것 같다. 시공사가 현장에서 참조하여 시공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건축주가 원하는 공간의 세부적인 사항은 시공사와 그때그때 얘기하며 진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전원주택이냐, 판자집이냐…설계가 좌우



 그럼 이제 와서 필자를 찾아온 이유가 궁금해서 물었다. 그러자 노부부는 "그런 식으로 주택 건축을 진행하다 보니 집이 완성되고 나서 어떤 모양이 될지 궁금하고, 그리고 완성이 언제 될지도 모르겠어 찾아왔노라"고 했다.

그러면서 노부부는 지금까지 뭐든지 건축주가 요구하면 들어주겠다던 시공사가 지금은 태도가 180도 돌변해 이제 무슨 이야기를 해도 잘 안 들어 준다며 하소연했다. 그래서 답답한 마음에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필자를 찾아왔다는 것이다.

노부부가 처음 건축을 시작할 때만 해도 상황은 좋아 보였다. 걱정했던 설계비는 생각 이상으로 아주 저렴했고, 별 탈 없이 인허가도 빠르게 나왔다. 시공사도 설계사가 그냥 소개해주는 곳으로 했다. 설계 과정에서 간간이 보고받은 것은 언제 인허가가 끝나고 착공할 수 있는지 여부 정도였다.

 문제는 설계 과정에서 중요하게 결정되고 알아야 될 내용(구조·공간활용·예산과 그에 따른 설계사의 제안 등)은 전혀 협의가 돼 있지 않다는 점이었다. 노부부는 본인이 짓는 집이 그리 큰 건물도 아니고 단독주택 하나 짓는 것이라고 가볍게 생각했다고 한다. 그래서 시공사와의 조율로 충분히 자신들이 원하는 공간을 만들 수 있을 거라 생각했고 설계사무소에서도 그렇게 유도를 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노부부는 설계사무소를 잘못 만나 그 댓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었다.
 

▲ 좋은 건축설계는 결국 준비된 건축주로부터 나온다. ※사진은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한 것으로 기사 내용과는 전혀 관련이 없습니다.


노부부가 주택 건축 전 과정을 의뢰한 설계사무소는 알고보니 '허가방'이라고 불리는 인허가 전문 업체였다. 허가방은 복잡하고 까다로운 주택 건축 인허가 절차를 대신해 주는 일부 토목측량설계사무소를 말한다. 대부분 인허가 편의를 중심으로 설계 도면을 작성하다 보니 설계비용 자체는 저렴하다. 하지만 설계비는 무조건 싸다고 좋은 것만은 아니다.

주택 건축에서 설계는 가장 기본에 해당한다. 설계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주택 건축의 성패도 결정된다. 때문에 가급적 설계비를 좀더 지불하더라도 전문적인 사무소에 건축 설계를 맡기는 것이 좋다. 싼 맛에 허가방에서 대충 그려 주는 도면을 바탕으로 집을 짓다가는 추가 비용이이나 하자가 발생해 두고두고 낭패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설계는 단순히 건축도면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자재내역서, 공정계획표 등을 모두 포함한 건축의 마스터플랜(Master Plan)을 짜는 것이다.  시공업체와 건축계약을 할 때 이 모든 서류가 돈을 지불하는 근거가 된다.

따라서 설계 과정이 완벽하면 중간에 시공업자가 농간을 부릴 수가 없다. 비용을 좀더 들이더라도 설계사무소에 감리까지 의뢰하면 시공 과정을 보다 완벽하게 관리ㆍ감독할 수 있다.

겉치레도 필요하지만 실용과 실속이 더 중요



노부부와는 반대에 해당하는 사례도 있다. 수년 전 어떤 예비 건축주 한 분이 대뜸 집하나 짓는데 설계비가 얼마냐고 물어봤다. 나름의 원칙으로 설계비와 이런저런 진행과정을 안내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한 유명 건축가와 계약을 하고 진행을 하게 되었다는 통보를 받았다. 설계비는 필자가 제안한 금액의 두 배 이상이었다. 설계가 디자인적인 가치를 가질 수 있다고 봤을 때,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1년 후 문제가 터졌다. 오랜만에 연락한 이 건축주는 “집이 완공이 되어 2달가량 살고 있는데, 이 집을 리모델링해 줄 수 있겠냐”라고 했다. 현장에 가보니 그 집은 외관이 독특하고 아름다웠다. 언뜻 보기에 별문제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얘기를 들으니 상황이 심각했다.

방 2개가 더 필요하고, 화장실도 추가로 필요하며, 추가적인 단열시공과 함께 창호 교체도 원했다. 천정과 창문이 너무 높고 커서 겨울에 아무리 보일러를 가동해도 추운 것이 이유였다. 뒷마당이 필요해서 뒤땅을 더 사야겠다는 얘기까지 했다.

이미 완공된 집에 대해 너무 큰 변화를 원해서 이유를 묻자, 이전 설계사에 요구를 했지만 설계자가 자신의 설계가 더 옳은 방향이라고 고집하고 강행했다고 한다. 건축주는 설계비가 비싸니 결과물도 무조건 좋을 것이라 생각하고 막연히 믿고 진행한 것이다.

물론 하나의 건축물이 도시를 구성하는 요소가 된다. 그러기 때문에 공공적 성격과 아름다운 공간을  구현하기 위한 노력은 설계자의 의무이다. 하지만 그전에 건축주의 기본적인 요구 사항이 충족되어야 한다.

건축주가 놓치는 부분이 있어 무리한 요구를 하거나 반대로 더 좋은 발전방향을 말한다면, 설계자는 성실히 방안을 제시하고 동의를 구해야 한다. 설계자 자신만의 성과를 위해, 또는 해보고 싶었던 상상 속 건물을 만들기 위해 건축주에게 맞지도 않는 건물을 설계하게 둬서는 안 된다. 자칫 건축주가 쓸모없이 비싼 옷을 입게 돼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전재산 투입해 짓는 우리집, 사전준비는 필수



그럼 이 두 가지 사례의 공통점은 뭘까. 설계 과정에서 건축주는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하고 어떻게 요구를 해야 하는지 전혀 무지한 상태에서 건축을 시작했다는 점이다. 집을 짓기 위해 설계자를 선정하기 위해서는 건축주 나름의 기준이 세워져 있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종국에는 '싸면 싸서 좋고 비싸면 비싸서 좋겠지'로 귀결돼 낭패를 겪기 십상이다.

이를 피하기 위해서는 건축주가 집을 짓기 전 어느 정도 사전 지식이 필요하다. 건축 관련 강의, 서적, 건축 잡지 등 여러 루트를 통해 기본 지식을 튼튼히 쌓아두고 자신이 원하는 것의 종류와 방향을 발전시켜 놓아야 피해를 막을 수 있다.

범위가 방대하고 잘 모르겠다면 설계 시작 전 여러 설계사들의 조언을 듣고 조금씩 진전시켜나가는 것도 방법이다. 이러한 준비가 되었을 때, 자신과 맞는 설계사를 선정하고 설계비용을 협의해야 한다.

건축주라면 적어도 내 집이나 건물의 설계도면이 어떤 내용인지 알 수 있는 수준까지 준비되어야 한다. 안 그러면 위의 두 사례처럼 ‘내 돈 들여서 남의 집을 설계하는’ 불행한 일이 생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설계비를 협의할 때는 건축주와 설계자가 어떤 교감 과정을 거치게 되는지, 어떤 단계가 있는지, 그리고 시공 시 문제가 없는 결과물을 받을 수 있는지 등을 충분히 고려하고 산정해야 한다. 되도록 많은 설계자들을 만나보고 얘기를 나눠봐야 할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객관적인 설계비 산정에 관한 기준들도 볼 필요가 있다. 건축사법상 규정하는 [공공발주 사업에 대한 건축사의 업무범위와 대가기준]이나, 대한 건축사 협회 홈페이지상의 업무 대가 산정 프로그램 등은 어느 정도 도움이 될 것이다.

 대부분의 개인 건축주들은 평생 동안 모은 자금으로 집이나 건물을 짓기 때문에 실패해서는 안 된다. 설계는 그 첫 단계이며 이후의 모든 공정을 좌우하는 중요한 과정이다. 좋은 설계자를 만나면 좋은 결과물이 나올 확률이 높아진다.

 내 집을 짓는데 좋은 설계자는 비용이 싸거나, 혹은 비싸지만 유명세가 있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결국 준비가 잘 돼 있는 건축주가 좋은 집을 짓는다.

<본 글은 필자 개인의 의견으로 중앙일보 조인스랜드와는 관련이 없습니다.>

김경민
- 계약/견적
- 여기건축사사무소 대표/소장
- 행복 건축협동조합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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