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대책 열여덟 차례 나왔지만…고소득층엔 약발 안 먹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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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 상위 20% “집값 상승 기대” 세금 올라도 부동산에 투자 의향

김모 씨는 2017년 하반기 서울 마포구 아현동 마포래미안푸르지오 아파트 전용면적 84㎡(옛 34평)를 8억6000만원에 샀다. 집값은 김씨의 기대 이상으로 올랐다. 현재 호가(부르는 값)는 16억~17억원이다. 재산세 등 보유세는 2018년에 180만원, 지난해엔 234만원을 냈다. 김씨는 “올해는 330만원 정도로 예상하는데 부담이 적지 않지만 그래도 주변에선 투자를 잘했다고 칭찬한다”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이후 지금까지 총 18번의 부동산 대책을 내놨다. 대부분 세금을 더 부과하고, 대출 길을 막는 등의 수요 억제책이었다. 하지만 이런 대책이 정작 타깃으로 삼던 고소득층에겐 ‘약발’이 먹히지 않았다는 게 확인됐다. 중앙일보와 국회 추경호 의원실이 지난해 12월 발표된 가계금융복지조사 마이크로데이터를 분석한 결과다. 가계금융복지조사는 가계의 자산과 부채, 재무건전성 등을 분석하기 위해 매년 2만 가구를 대상으로 실시하는 조사다.
  
일단 이번 조사 설문 항목 중 소득이 증가하거나 여유 자금이 생길 경우 향후 부동산에 투자할 것인지 묻는 말에 ‘그렇다’고 대답한 가구의 비중은 2년 연속 감소했다.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어느 정도 효과를 발휘했다고 볼 수 있다.  
  

▲ 그래픽=신재민 기자

 
하지만 소득별로 쪼개보면 의외의 결과가 나타난다. 부동산에 투자하지 않는 이유를 묻는 말에 ‘세금 부담’을 꼽은 응답자가 1~2분위(소득 하위 40%)에선 증가했지만 4~5분위(소득 상위 40%)에선 도리어 줄었다. 고소득층의 세금 부담을 늘리는 정책을 썼지만, 정작 당사자들은 크게 부담을 느끼지 않는다는 의미다.
  
김종필 세무사는 “고강도 대책이 연이어 나온 지난해에도 다주택자를 제외하곤 세금 부담 때문에 집을 팔려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세금이 올라도 집값이 더 오르니 손해 볼 게 없는 장사다. 이모 씨가 2017년 9월 19억원에 산 서초구 반포동 래미안퍼스티지 전용 84㎡는 지금은 27억~30억을 호가한다. 2018년 560만원가량 냈던 보유세(종합부동산세 포함)는 지난해 810만원으로 뛰었다. 올해는 1200만원 정도로 추정한다. 이씨는 “2년 반 만에 집값이 10억가량 올랐는데, 세금으로 1년에 몇백만원 더 낸다고 팔겠느냐”고 말했다.  
  
부동산을 바라보는 고소득층의 시각 자체도 크게 바뀌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1~4분위의 경우 부동산에 투자하는 주된 목적을 ‘가치 상승’으로 꼽은 비중이 줄거나 크게 변화가 없었다. 하지만 5분위는 2018년 23.8%에서 2019년 25.2%로 오히려 1.4%포인트 증가했다. 고소득층은 앞으로도 집값 상승을 기대하고 투자를 할 의향이 있다는 뜻이다.
  

▲ 그래픽=신재민 기자


정책의 영향은 엉뚱한 곳에서 나타나기도 했다. 지난해엔 주거 형태를 바꿔 부채를 갚은 저소득층(1~2분위)이 급증했다. 1분위의 경우 부채를 상환하기 위해 전세 또는 월세로 전환하거나 주거 규모를 줄인 가구가 2018년 2728가구에서 2019년 1만3390가구로 크게 늘었다. 2분위도 같은 기간 5411가구에서 2019년에 2만1632가구로 증가했다. 소득 부진 등으로 부채 상환에 어려움을 겪는 가구가 많아졌다는 의미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내내 부동산을 잡겠다고 했지만 애초에 고소득자나 자산가에게 효과를 발휘할 수 없는 정책만 쏟아냈다”며 “오히려 대출·청약 규제로 서민의 내 집 마련 장벽만 높여놨다”고 말했다. 추경호 자유한국당 의원은 “현 정부는 공급확대를 통해 해결해야 할 문제마저도 이념에 사로잡혀 정치적으로 접근하고 있다”며 “이런 정책이 반복되면 결국 중산층과 서민만 피해를 볼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