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럼화·안전 위협 ‘도심 흉물’…짓다 만 건축물 전국에 356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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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슬럼화 유발, 주민 안전 위협…정비사업·특별법 가동에도 현장선 힘 못써

“저거 때문에 상권이 죽었다고 콕 집어 말하긴 어렵지만, 무관하다고 말하기도 어렵지. 주변이 대부분 저층 건물인데 저것만 흉칙하게 솟아 전경을 헤치니까 뭘 해도 분위기가 잘 안 살아.”(보쌈집 사장 이모씨)
  
“이 일대가 서울 서남부권에선 제일 큰 상권이었어. 교통체증 때문에 택시가 들어오기 꺼릴 정도로 붐볐지. 음식점이나 술집도 잘됐고. 그게 불과 10년 전 일인데, 요즘엔 통 흥이 안나. 저거 때문에 그런가 싶기도 하고.”(고기집 사장 최모씨)

▲ 앙상한 뼈대만 드러낸 채 13년째 방치돼 있는 서울 도봉구 창동민자역사 공사현장. [사진 박정식 기자]

  
이들이 공통으로 가리키는 저것은 신림백화점이다. 서울 관악구 신림동 1433-1에 위치한 신림백화점은 14년 가까이 방치되고 있는 미완공 건축물이다. 지하 7층~지상 12층, 연면적 약 3만9600㎡(약 1만2000평)의 건물로 2009년 완공을 목표로 2006년에 첫삽을 떴다. 하지만 시공사 씨앤우방과 시행사 플레이쉘의 부도로 공사가 중단됐다. 채권단의 시공사 재선정, 분양계약자들의 중도금 납부 거부, 하도급 시공업체들의 유치권 행사, 수 차례 공매 유찰 등을 겪으면서 이름도 씨앤백화점에 이어 ART백화점으로 바뀌었지만 공사는 한번도 재개되지 않았다. 
  

▲ 서울 신림역 초역세권에 14년 가까이 방치되고 있는 옛 신림백화점 공사현장. [사진 박정식 기자]

 
2월 25일 찾아간 신림백화점은 시커먼 철골을 드러낸 채 비바람을 맞고 있었다. 건물 외벽을 감싼 임시 포장재는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 바람에 휘날렸다. 건물 아래엔 사람과 차들이 수시로 지나다녔지만 출입을 막는 울타리만 쳐있을 뿐 추락물을 막아줄 그물망은 보이지 않았다. 신림백화점 입지는 지하철 2호선 신림역 초역세권인데다 차량 소통도 많은, 이 지역 교통의 중심지다. 바로 맞은편엔 15층 높이의 대형 쇼핑몰 2개가 서있으며, 먹자골목과 모텔촌이 형성된 곳이다. 하지만 이곳에선 북적이는 분위기를 찾아볼 수 없다. 인근의 공인중개사무소 사장은 “르네상스쇼핑몰과 포도몰쇼핑몰에 이어 신림백화점까지 들어선다고 하니 당시 분양계약자는 물론이고 주변 상권에 눈독을 들인 투자자가 적지 않았다”며 “하지만 공사가 오래도록 지연되고 상권에 도움이 되지 않자 흉물이 된 신림백화점을 탓하는 분위기가 팽배해졌다”고 말했다. 
   

종로구 관광휴게시설은 E등급(매우 불량) 상태


 

창동민자역사도 서울시가 골머리를 앓는 곳이다. 서울 도봉구 창동 135-1에 위치한 이곳은 한국철도공사가 2001년 창동민자역사법인을 세워 지하철 1·4호선 창동역을 지하 2층~지상 10층 규모의 복합쇼핑몰로 만들 계획이었다. 하지만 횡령 사건과 부도로 멈췄다. 2004년에 착공했으나 건설사가 3차례나 바뀌면서 2007년에서야 본 공사에 들어갔다. 그러나 이마저도 이내 중단됐다. 서울시가 2017년에 정비계획수립 용역계약까지 하면서 되살리기에 나섰지만 지금까지도 지지부진한 상태다. 앙상한 뼈대만 드러낸 채 13년째 흉물스럽게 방치돼 있는 상태다.
  
서울회생법원이 2018년에 실사를 진행한 결과 사업 전망이 불확실하다는 결론을 내리기도 했다. 이 때문에 창동역을 사방으로 둘러싸고 있는 아파트단지 주민들은 불만이 크다. 창동역 주변엔 대형 마트와 소규모 재래시장이 있어 유동인구가 많은 편인데, 그래서 더욱 눈엣가시가 되었다.
  
신림백화점이나 창동민자역사처럼 공사 중단 후 오랫동안 방치되고 있는 건축물이 전국에 산재해있다. 국토교통부(이하 국토부)가 조사한 결과 전국 387곳에 달했다. 서울 23곳, 경기 52곳, 인천 15곳 등 수도권이 90곳에 이른다. 지방은 강원 63곳, 충남 56곳, 충북 37곳, 경북 30곳, 제주 24곳, 전북 22곳, 전남 16곳, 부산 15곳, 경남 12곳, 대전 9곳, 광주 7곳, 대구 3곳 울산 2곳, 세종 1곳이다. 이 가운데 5년 넘게 방치된 건축물이 전체의 92%를 차지한다.
  
국토부가 이 건물들의 상태를 점검해보니 서울에선 대치동 칠산빌딩, 강서구 은성교회, 관악구 당곡플라자, 양천구 목동제일시장 주상복합, 영등포구 파크원, 종로구 공동주택 등이 콘크리트 강도, 주요 구조부 균열, 골조 상태, 주요 구조 접합부에서 C등급(보통)을 받았다. 시간이 흐르면 D등급(불량) 상태가 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광진구 자양동 금관포란재아파트는 흙막이, 구조체 부착물, 토목 외벽옹벽, 가설 울타리에서 D등급(불량)을 받았다. 종로구 관광휴게시설은 구조체 부착물과 기타 위험요소에서 E등급(매우 불량)으로 판정됐다. 경기와 인천은 물론 지방의 방치 건물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지역 슬럼화를 유발하고 주민의 안전까지 위협하는 공사중단 건축물을 해결할 방안은 없을까. 국토부는 민원이 끊이질 않자 2015년 12월부터 공사중단 장기방치 건축물 선도사업을 시작했다. 심사를 거쳐 건축물을 선정해 용도 변경, 사업 전환 등 공사를 재개하도록 지원하는 사업이다. 한 예로 25년 동안 공사가 중단된 과천 우정병원을 1차 사업에 선정해 철거하고, 오는 3월에 174가구 규모의 아파트로 분양할 예정이다. 
   

중앙정부·지자체 간 정비책임 떠넘기기 일쑤


 

▲ 도심 속 흉물이 된 안양역 앞 안양원스퀘어 쇼핑몰 공사현장. [사진 경기도]


정부는 이와 함께 2018년에 ‘공사중단 장기방치 건축물의 정비 등에 관한 특별조치법’도 개정했다. 주요 내용은 철거 명령, 공사비 보조·융자, 분쟁 조정, 조세 감면, 건축물 취득, 위탁·대행 사업에 의한 철거·신축·공사재개 등이다. 이와 함께 소유주와의 개별 합의·매수, 공익사업을 위한 협의·수용, 민사집행·국세징수를 위한 경매·공매를 통한 공사중단 건축물 취득도 허용했다. 건축주를 바꿔서라도 공사를 재개하기 위해 문턱을 낮춘 것이다. 특히 철거 명령은 공사중단 건축물이 도시 미관과 안전에 해가 된다고 판단되면 지방자치단체(지자체)가 건축주에게 철거를 명령하는 제도다. 건축주가 이행하지 않으면 징역형과 벌금을 부과할 수 있다. 행정대집행법에 따라 대집행도 할 수 있다. 이를 위해 건축주의 예치금을 대집행 비용으로 쓸 수 있고, 대집행 비용이 예치금보다 많으면 차액도 징수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제도도 현장에선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정부가 지원하는 선도사업의 경우 공사중단 건축물 중에서 사업성이 높은(개발하기 수월한) 것 위주로 선정하다 보니 낙후된 지역일수록 선정되기 어렵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강제성을 띈 철거 명령도 작동하는지 의문이다. 민간 건축물은 개인재산 침해 논란을 일으킬 수 있어서다. 게다가 공사 중단 건축물은 자금난·부도·소송 등으로 인해 시행사·시공사·투자자 간의 권리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어 해결하기가 만만치 않다. 건축주에게 공사비의 일부를 보조하거나 세금을 감면해주는 제도 역시 실효성을 의심받고 있다. 국민의 혈세를 공익이 아닌 개인재산에 이용한다는 지적이다. 채권자 수, 건물·토지의 소유주, 유치권 유무 등에 따라 해결 가능성과 해결 기간도 크게 달라진다.
  
그러다보니 지자체는 해당 건축물에 대해 안전조치를 강화하라는 공문만 되풀이할 뿐이다. 하지만 그마저도 현장에선 먹통이다. 또 공사중단 건축물에 대한 정비 책임을 중앙정부와 지자체 간에 서로 떠넘기기 일쑤다. 결국 공사 인·허가권을 갖고 있는 기초자치단체에 주로 책임이 쏠리고 있다.
  
서울시 주택건축본부 관계자는 “인·허가권이 자치구에 있으니 공사 재개 방안도 자치구에서 논의해야 할 사항이다. 시는 국토부와 공사중단 건축물을 고시하고 자치구에 공문을 계속 보내는 게 전부”라며 “용역도 진행해 봤지만 개인재산이어서 어찌할 도리가 없는데다 시가 다 매입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며 정비 사업의 한계를 말했다. 서울시는 지난 2월13일 서울시보에 관악구·도봉구·종로구·중랑구를 담당부서로 정해 관내 공사중단 건축물 8곳을 정비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그중엔 서울시의 오랜 숙원사업인 신림백화점과 창동민자역사도 포함돼 있다. 
   

페널티 적용, 지방공기업 역할 확대도 대안


 

▲ 2018년 7월 철거되기 전 옛 과천 우정병원 모습. [사진 연합뉴스]


▲ 우정병원이 철거된 자리에 들어설 아파트 투시도. [사진 한국토지주택공사(LH)]


하지만 지자체의 의지가 문제 해결의 한 열쇠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경기도는 지난해 공사중단 건축물을 해결할 전담팀을 꾸렸다. 경기도 건축디자인과, 한국토지주택공사(LH), 공사중단 건축물이 있는 시·군 10개팀 등 총 46명으로 구성된 태스크포스(TF)팀이다. 이들은 지난해 8월 도내 공사중단 건축물 42곳에 대한 정비계획을 세우고 문제 해결에 나섰다. 그중 2곳은 철거를 결정했으며 17곳은 건축주의 공사 재개 의사를 확인했다. 이와 함께 감정평가사·공인회계사·변호사 등과 협업해 자금난·소송 등으로 꼬여 있는 문제를 하나씩 풀어나갈 계획이다. 경기도 도시주택실 건축디자인과 관계자는 “도와 시·군이 머리를 맞대고 LH에게 자문도 구하면서 건축주 등 당사자를 설득하는데 주력한다”고 말했다.
  
인·허가 과정에서 벌칙 규정을 정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제 때 완공하지 않으면 건축주가 불이익을 받게 하는 것이다. 인천시는 송도 세브란스병원 건립과 국제캠퍼스 2단계 조성사업에 대해 연세대와 협약을 맺으면서, 연세대의 미이행 시 페널티 조항을 넣었다. 내용은 부지 매매금에 대한 지연손해금 부과, 부지의 환매 등이다. 이와 함께 토지 계약에서부터 준공시기까지 구체적인 단계별 추진계획을 제출하도록 하면서 연세대가 사업 추진에 의지를 갖도록 촉구했다.
  
이해관계자 간의 최대 쟁점인 보상 문제도 숙제다. 전문가들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기존 토지·건물 평가기준을 그대로 적용하는 대신 공사중단 건축물의 특성을 반영한 감가 보상 기준과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공사중단 건축물은 사용가치가 없는 건축물에 사용권을 부여한 것이므로 토지 사용 제한 상황을 반영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또한 착공 시 투입비, 사용 불가 부분의 철거·공사비 등을 반영함으로써 과다보상 논란을 일으키는 기존 건물 평가도 개선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김태훈 한국부동산연구원 연구위원은 방치건축물 법령정비 제도개선 방안연구를 통해 “감가요인도 물리적(마모·파손·하자 등), 기능적(설비 부족·불량 등), 경제적(환경과의 부적합, 시장 쇠퇴 등)으로 세분화해 명확한 근거를 세워야 한다”고 설명했다. 김동신 한국토지주택공사 연구책임은 정비 법령 개선안과 관련해 “시·도지사는 광역정비계획을 짜고, 시장·군수·구청장이 정비계획을 수립·시행하는 지위 조정도 고민해볼 수 있다”며 자치단체장의 적극적인 개입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그는 또 “공사중단 건축물 정비사업의 참여조건을 완화해 지방공기업이 적극 참여할 수 있는 여건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