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정밀 타격하겠다더니, 전 국토 규제지역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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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226개 시·군·구 중 111곳 규제지역…유동성·전세난 때문에 풍선효과

특정 지역의 집값이 상승하면 그곳만 콕 찍어 정밀 타격할 수 있는 무기가 있다. 투기과열지구·조정대상지역(규제지역)이란 폭탄이다. 문재인 정부는 집권 초기부터 규제지역은 주택 투기를 몰아낼 수 있는 강력한 무기이자 해당 지역만 정밀 폭격할 수 있는 스마트 폭탄이라고 선전했다. 집값이 오르면 가차 없이 핀셋규제를 하겠다는 경고였고, 실제로 실행도 했다.

그런데 좀처럼 약발이 먹히지 않는다. 서울 강남 집값을 잡겠다며 들고 나온 정밀 타격 무기를 사실상 전 국토를 대상으로 남발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 정부가 지난 17일 조정대상지역으로 지정한 경기도 파주 운정신도시 일대. [사진 뉴시스]


문재인 정부 초기 서울과 경기 일부, 부산·세종시에 머물렀던 규제지역은 현재 강원·제주를 제외한 15개 광역자치단체, 111곳으로 급증했다. 전국 226개 시·군·구 중 절반가량이 규제지역으로 묶인 것이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송언석 의원(국민의힘)에 따르면 국토의 8.8%인 8800㎢가 규제지역이고, 이곳에 국민의 70.1%인 3632만7710명이 살고 있다. 이쯤 되면 정밀 타격이 아니라 무차별 폭격이다.   
   

▲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런데 약발이 전혀 먹히지 않는다. 한국부동산원(옛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지난달 조정대상지역으로 묶인 부산 남구 아파트값은 12월 둘째 주(14일 기준) 1.07% 상승했다. 첫째 주보다 되레 2배가량 상승폭이 커졌다. 같은 기간 해운대구도 0.26%에서 0.37%로 상승폭을 키웠다. 2016년 규제지역으로 묶였던 세종시 아파트값은 최근 3개월 간 6.31% 올랐다.

서울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2017년 8·2 대책을 통해 서울 전역을 투기과열지구로 지정했는데, 당시 99.3이었던 서울 아파트값지수(2017년 11월=100)는 지난달 말 113.1으로 상승했다. 
   
규제지역 주변 비(非)규제지역 집값이 오르는 풍선효과도 여전하다. 당장 17일 조정대상지역으로 묶인 천안·논산·공주시 인근 아산시 집값이 들썩이고 있다. 아산시 탕정면 탕정삼성트라팰리스 4단지 전용면적 84㎡형은 올 들어서만 1억원가량 올라 4억2000만원 선에 매물이 나온다.

주변 도시가 규제 지역으로 묶인 구미·양산시와 강원·제주에서도 풍선효과가 관측되고 있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시중 부동자금이 넘쳐나고 전세난이 전국적으로 확산하고 있어 지방 비규제지역으로 풍선효과가 계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건 정부가 규제지역의 어설픈 지정과 해제를 반복하고 있는 데다 투기과열지구·조정대상지역의 태생적 한계로 선제 대응이 불가하기 때문이다. 규제지역으로 지정하려면 최근 3개월 간 집값 상승률이 물가상승률보다 높아야 한다. 이미 집값이 다 오른 뒤에야 지정할 수 있다는 얘기다. 뒷북 규제 논란이 끊이지 않는 것도 그래서다.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도 23일 인사청문회에서 “조정대상지역이 너무 늦게 지정돼 규제 효과가 떨어지는 면이 있다”고 밝혔다. 가격이 오를수록 수요가 느는 이른바 ‘베블런 효과’도 무시할 수 없다. 정부가 규제지역을 늘릴 때마다 시장에선 “정부가 투자할 곳을 찍어주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사실 이런 문제는 2002년 투기과열지구를 법제화했을 때부터 예견됐던 문제다. 그럼에도 노무현 정부는 규제지역을 대거 지정했다 실패를 맛봤다. 2006년 버블세븐(서울 양천·서초·강남·송파구, 안양 평촌, 성남 분당, 용인 수지) 투기과열지구 지정이 대표적이다. 노 정부는 이 지역 집값이 급등하자 규제지역으로 지정했지만, 풍선효과 등 부작용만 양산해 실패한 대책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문 정부가 이를 고스란히 답습하고 있는 셈이다.

문 정부는 한술 더 떠 조정대상지역이란 새로운 규제지역까지 만들어냈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선한 의도를 앞세운 규제 만능주의가 빚어 낸 참극”이라고 평가했다. 
   
전문가들은 집값이 오르면 뒤늦게 규제지역으로 지정하는 방식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정성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페이스북에 “국토부의 조정지역 지정 정책은 사실상 실패한 정책”이라며 “전 도시지역을 다 묶거나 다 해제해 시장에 맡기는 게 나을 것”이라고 적었다.

그러나 변 후보자는 되레 규제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변 후보자는 23일 “주식시장의 얼리워닝(조기경보) 시스템처럼 부동산 빅데이터를 이용해 가격이 오를 것을 (미리) 파악해 적절한 규제를 가하겠다”고 말했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대학원 교수는 “규제는 일시적인 효과가 있을 뿐 수급 불균형을 해결하지 않고는 한계가 있다”며 “양도세 등 거래세를 낮추는 등 기존 주택 보유자의 매물이 시장에 나올 수 있도록 하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