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무주택자도 남 일 아니다···종부세 9억원 '나비 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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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부세 1주택자 기준 9억원, 대출·청약 등 규제 잣대로 쓰여

자녀 학교 문제로 본인이 소유한 서울 강북 아파트를 전세로 주고 강남에서 전세로 사는 박모씨. 종합부동산세(종부세) 기준 금액(공시가 9억원) 논란이 남의 일이 아니다. 공시가격이 9억원 이하인 강북 아파트 때문이 아니다. 종부세 기준이 올라가면 현재 막혀 있는 강남 전셋집 전세대출이 가능해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서다. 

박씨는 다시 계약해야 하는 강남 전셋집 보증금을 올려주기 위해 전세대출을 받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강북 집값이 올라 9억원을 초과하면서 전세대출을 받을 수 없게 됐다.  
 
박씨는 “종부세 기준이 9억원에서 올라가면 전세대출 규제 가격인 9억원도 따라서 바뀌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주택시장이 종부세 완화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종부세 대상자뿐 아니라 무주택자에 이르기까지 종부세 기준이 ‘나비효과’처럼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1주택자 종부세 기준인 ‘9억원’이 세제·대출·청약 등 전방위 주택시장 규제의 ‘닻’으로 설계돼 있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종부세 기준이 상향되면 다른 규제 금액도 검토가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종부세 기준은 양도세 고가주택 기준


  
바로 영향을 받을 게 1세대 1주택자 양도세 비과세 기준이다. 현재 거래가격 9억원 이하다. 1주택자도 9억원 초과분에 양도세를 낸다.
  
법에 ‘고액’으로 표현된 종부세 기준은 양도세에서 유래했다. 양도세에 1세대 1주택자 비과세 혜택에서 제외하는 ‘고가주택’ 기준이 종부세 기준이 됐다. 금액 숫자는 그대로 가져다 쓰고 거래가격을 공시가격으로 바꿨다. 2006년 종부세 기준을 6억원으로 설정했을 때 양도세 고가주택이 6억원 초과였다. 
   
2008년 금융위기 직후인 그해 11월 양도세 고가주택이 9억원 초과로 완화됐다. 같은 달 헌법재판소의 일부 위헌 결정 이후 조정된 1주택자 종부세 기준이 9억원이다. 현재 13년째 둘 다 그대로다. 그 사이 집값이 전국 42.7%, 서울 43.2% 올랐다(국민은행). 2009년 초 서울에서 거래된 9억 초과 아파트가 10가구 중 하나였는데 올해는 10가구 중 4가구꼴이다.
 
2010년 이전 고가주택과 종부세 기준에 못 미치던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와 서초구 반포동 반포주공1단지 3주구 몸값이 지금은 기준의 2배가 넘는다. 

공시가격 9억원은 건설임대주택 종부세 제외와 1주택자 월세 임대소득 과세 기준이기도 하다. 건설업체가 지어 임대하는 건설임대주택은 종부세 과세 대상에서 제외되는데 공시가격 9억원 이하까지다. 6억원이었다가 올해 바뀌었다. 
 
월세가 2주택 이상 소유자에, 전세는 3주택 이상부터 소득세를 매기는 1주택자도 9억원 초과이면 세금을 내야 한다. 
  
9억원은 대출에도 광범위하게 얽혀 있다. 지난 박근혜 정부는 2016년 달아오르던 분양시장의 가수요를 억제한다는 명목으로 분양가 9억원 초과 주택의 중도금 대출을 제한했다. 9억원 초과이면 분양가의 대개 60%를 차지하는 중도금을 자력으로 마련해야 한다. 현 정부 들어 본격화한 대출 규제의 시작이었다.
  
현 정부는 중도금에서 주택담보대출로 대출 규제 범위를 넓혔다. 2019년 12·16대책에서 투기지역투기과열지구 내 9억원 초과의 대출 한도(LTV)를 줄였다. 15억원 초과 주택의 대출을 아예 금지하고 15억원 이하 주택에서 9억원 초과분의 대출 한도를 40%에서 20%로 줄였다.

대출에도 9억원 초과 주택을 의미하는 ‘고가주택’, 15억원 초과의 ‘초고가주택’이란 말이 생겼다. 이때 금액은 시가다. 무주택자가 구매하는 집이 9억원 초과이면 1년 이내에 전입하는 조건으로 담보대출을 받을 수 있다.  

9억원은 ‘로또 분양’을 꿈꾸는 30대 청약 대기자도 상관있다. 투기과열지구에서 청약가점이 낮은 30대 무주택자의 청약 지름길인 특별공급이 분양가 9억원 이하만 대상으로 하기 때문이다. 일부 고가 아파트 특별공급 당첨자에 경제적 능력이 없는 10대, 20대가 나오자 정부가 2018년 5월부터 특별공급을 제한했다.
 
30대 무주택자 김모씨는 “분양가가 계속 오르는 상황에서 특별분양 분양가 제한은 물량을 줄이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불만을 나타냈다.     
 
분양가 상승으로 특별공급 대상이 줄면서 정부가 30대 ‘패닉바잉’(공포구매)를 억제하기 위해 신혼부부·생애최초 등 젊은 층을 대상으로 한 특별공급 비중 확대 효과가 떨어지는 셈이다. 


공시가에서 시세로 조정해 완화


 
중년·고령층도 9억원에 민감하다. 공시가격 9억원 이하 주택만 주택연금을 받을 수 있다. 시가를 기준으로 9억원이었다가 대상을 확대하기 위해 지난해 12월 공시가격으로 바꿨다. 공시가격 9억원이면 시세 12억~13억원이다.  
 
이처럼 종부세 기준 금액이 주택시장 규제 전반에 고구마 줄기처럼 얽혀 있어 종부세 기준 금액 조정이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종부세 기준 완화가 전반적인 규제 완화의 신호로 받아들여질 수 있어서다. 9억원 변경은 아래 금액인 6억원, 3억원, 1억원을 기준으로 한 규제에도 연쇄반응을 일으킬 수 있다.
  
박원갑 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종부세 기준 조정의 파장이 크기 때문에 정부와 여당이 기준 금액보다 공제 확대 등 다른 방식으로 종부세를 완화하는 방안을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서진형 권대중 명지대 교수는 “규제 완화보다 규제의 합리화·정상화라는 취지에서 시장 상황에 맞지 않는 비현실적인 기준은 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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