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26가구 강동롯데캐슬 전세 0건, 2억 더 줘도 들어갈 집 없다

[중앙일보 조인스랜드] 입력 2020.10.16 11.37

1000가구 이상 대단지 아파트 전세실종

3226가구가 거주하는 서울 강동구 암사동 강동롯데캐슬퍼스트에는 현재 전세 매물이 0개다. 최고 34층, 40개 동 규모의 이 아파트 단지에서 전세 매물이 동난 지 두 달여 됐다. 7월 말 주택임대차보호법 시행 전후로 벌어진 매물 실종 현상이다. 
  
인근 한 공인중개업소 대표는 “대기자는 많은데 매물이 언제 나올지 기약도 없고, 나오면 광고로 올릴 것도 없이 바로 채가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기존 세입자들이 계약갱신청구권을 써서 2년 재계약을 택하면서 벌어진 현상이다. 그는 “전세 매물이 나온다 해도 84㎡ 기준으로 보증금을 두 달 전보다 2억원 이상 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일대 전용 84㎡ 아파트의 전세 시세는 현재 8억5000만원 선이다. 6~7월에는 6억원대였다.   
 

▲ 40개동, 3226가구 규모의 이 대단지 아파트에 전세 매물이 하나도 없다. 15일 서울 강동구 암사동 강동롯데캐슬퍼스트 단지의 모습. [사진 장진영 기자]

 
서울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정부의 엇나간 전·월세 정책이 불러온 전세 절벽은 전국적인 현상으로 굳어지고 있다. 부동산 빅데이터 업체 ‘아실(아파트 실거래가)’을 통해 전국 1000가구 이상 아파트 단지를 전수조사한 결과 총 1798개 단지 중 72%(1299곳)가 전세 매물이 5건 이하인 것으로 나타났다.  
  
경기도의 경우 1000가구 이상의 대단지 아파트 561곳 중 전세 매물이 5건 이하인 단지는 73%(408곳)에 달했다. 세종시의 경우 대단지 아파트 21곳 중 19곳(90%), 광주시의 경우 55곳 중 50곳(91%)의 전세 매물이 5건 이하로 집계됐다.  

▲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아예 매물이 없어 전셋값을 올려주고서라도 못 들어가는 단지가 수두룩하다. 전국 1000가구 이상 규모의 아파트 단지 중 ‘전세 매물 제로(0)’ 단지는 22%(390단지)에 달했다. 대단지 아파트 다섯 군데 중 한 곳꼴로 매물이 전혀 없다는 이야기다.   
 

▲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전세 절벽은 주택시장 전체의 왜곡을 가중한다. 3209가구 규모인 인천 남동구 만수동 향촌 휴먼시아 1단지의 전세 매물이 동났다. 그러나 이 단지의 매매 물건은 155건이다. 한번 전세를 놓으면 4년간 묶이다 보니 전세보다 매매나 월세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매매 물건이 많다면 아파트 매매 가격이 내려가야 하는데 가격은 굳건하고 되려 소폭 올랐다. 인근의 한 공인중개사 측은 “전셋값이 올라 불안한 세입자들이 아파트를 사면서 가격이 안 내려간다”고 설명했다. 급등한 전셋값이 매매수요를 일으켜 또다시 집값을 떠받치고 있는 모양새다. 
  
2686가구 규모의 울산 북구 매곡동 월드메르디앙 월드시티의 전세 매물도 동난 지 오래다. 서울 및 수도권에서 계약갱신청구권으로 재계약이 많아지면서 전세 매물이 잠겼다면 지방의 경우 전세 매물 자체가 줄어들고 있다. 다주택자들이 세 부담에 전세 대신 매매를 택하면서다.
  

잘 안 오르는 재건축 아파트 전셋값도 고공행진

 
 

▲ 전세가 사라진 임대차 시장. 서울 강동구 암사동 강동롯데캐슬퍼스트 단지 인근 공인중개사무소의 모습. [사진 장진영 기자]

 
서민 임대차 시장도 마찬가지 양상이다. 홍남기 부총리는 14일 부동산시장 점검 관계 장관 회의에서 “기존 임차인 주거안정 효과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현장의 분위기는 다르다.  
  
3710가구 규모의 서울 마포구 성산시영아파트는 최근 재건축 안전진단에 통과하고 정비구역 지정을 추진하고 있는 34년 연식의 구축 아파트다. 재건축 추진으로 집값은 많이 올랐지만, 전셋값은 2억대에 머물러 있었다. 낡았지만 역세권 대단지여서 신혼부부나 도심으로 출근해야 하는 직장인들에게 셋집으로 인기가 많았다. 
  
하지만 현재 올라온 전세 매물은 5건에 불과하다. 그나마 있는 매물의 가격은 대폭 뛰었다. 이 단지의 전용 59㎡의 전셋값은 최근 3억원대에 실거래가를 기록하고, 4억원짜리 전세 매물이 나온 상태다. 전용 51㎡를 8년째 보유하고 있는 최 모(39) 씨는 “2012년 처음 이 아파트를 샀을 때 전셋값이 1억6500만원이었고, 현재 2억4500만원에 세를 주고 있다”며 “8년간 올린 전셋값이 8000만원 정도인데 최근 몇달 만에 8년간 올린 전셋값보다 임대료가 더 올랐다”며 놀라워했다. 그는 “구축 아파트라 재건축될 때까지 전셋값을 많이 올릴 생각이 없었는데 2년 뒤 다음 계약 때는 오른 시세대로 받을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임대차법 졸속 개정이 그나마 가격변동이 덜해 안정적이던 재건축 아파트의 전세 시장까지도 뒤흔들고 있는 꼴이다.  
  
정부는 3기 신도시의 물량이 공급되면 임대차 시장도 더 안정화될 것이라고 낙관론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 전망은 밝지 않다. 허윤경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주택 도시연구실장은 “실제 공급까지 최소한으로 잡아도 5년 뒤의 이야기인 데다가 3기 신도시의 경우 공공임대 물량이 많아 시장이 원하는 물량과 괴리가 크다 보니 현재 민간 임대차 시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전세난을 잡을 수 있을지 미지수”라고 진단했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세제ㆍ대출을 총망라한 정부의 각종 규제로 공급 심리가 위축되고 전세 시장이 불안정해진 상황에서 정부가 임대차법 개정으로 임대차 시장에 불을 질렀다”며 “규제 일변도의 정책을 유지한다면 공급은 더 줄어들 수밖에 없고, 임대차 시장은 더 불안정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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